古代에 가족관계가 확립되지 못한 一妻多夫制의 생활환경 속에서는
태어난 아이의 아버지가 누구인가를 알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아이를 출산한 어머니 뿐 이엇읍니다. 따라서 <계집 女>변에 <날 生>자를 姓이라 하는 것 입니다
그리고 해가 지면 누가 누구인가를 구별하기 어렵게 때문에 집 밖에 나가 있는 아이를 부르기 위해서 붙혀진 기호가 이름의 시초입니다. 따라서 <저녁 夕>밑에 <입 口>자가 있읍니다.
다시 말해서 해가 질 무렵에 자식을 부르는 어머니의 마음에서 만들어 진 것이 성명(姓名)입니다
성명학은 사람의 성(姓)과 이름(名)을 통하여 인간의 길흉화복을 판단하는 학문입니다.
성명학은 중국의 학문인 破字와 測字, 그리고 주역과 사주명리의 이론과 함께 발전되어 왔읍니다
성명학은 중국의 수나라(518~618년) 때 정립되어 파자로 명칭되었읍니다
이후 후한(947~950년) 때 점사가 발달되어 측자와 결합을 하였읍니다
현재와 같은 성명학의 체계는 송나라(960~1279년) 때 邵雄에 의해 정립되었읍니다.소웅이 쓴 <五行六神員訣>은 오행과 측자를 결합한 문헌입니다.
현재의 아기이름짓기-이름풀이-신생아작명-개명-상호 등에 있어서, 성명학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수리성명학은 송나라 蔡九峰에 의해 집대성되었읍니다. 채구봉의 <81 數元圖>은 한자의 획수에 의한 이름의 길흉을 쓰 놓았읍니다. 성명을 짓거나 풀이할 때 가장 많이 사용하는 대표적인 방법으로써 성명의 획수를 조합하여 그 뜻을 밝히는 것입니다.
발음성명학은 명나라 때 萬育吾가 쓴 < 三命通會>에 기록되어 있읍니다. 만육오는 이름이 가지고 있는 소리, 발음의 작용이 운세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였읍니다.
성명의 중요함은 <禮記> <春秋> <左氏傳> 등의 고전에 나와있읍니다.
< 예기 >에는 "아들의 이름을 지을 때는, 나라 이름이나 해와 달이나 산과 강이름으로 짓지 않는다"고 이름을 짓는 원칙을 쓰 놓았읍니다.
<춘추>에는 "높은 사람이나 부모님 그리고 현자의 이름으로 이름을 짓지 못하며, 부모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못한다"고 기록되어 있읍니다.
공자는 <名正言順>이라 하여 이름을 바르게 하면 그 사람의 말과 행동이 바르게 된다고 하였읍니다.
우리나라의 성명학은 중국 名家哲學을 반영한 유교의 正名思想의 영향을 많이 받았읍니다
<조선왕조실록>에는 성명을 대단히 중시하였음을 기록하고 있읍니다.
임금은 궁중명리관이 지은 이름을 신하에게 직접 하사하였으며 이것을 신하는 가문의 영광으로 새겼읍니다,
조선시대의 작명은 뜻이 정갈하고 반듯하며 좋은 의미를 가진 한자로써 이름을 지었읍니다.
<삼국사기> <삼국유사>에는 우리나라의 성명은 처음에는 성 없이 이름만으로 사용한 기록이 있읍니다. 삼국시대 이전에는 순 우리말을 사용하다가 신라 경덕왕때 부터 漢字式으로 이름을 지었읍니다.
성과 이름 3자 로써 성명을 구성하게 된 것입니다.
조선시대 과거제도 중 <잡과>의 <음양과>를 통하여 궁중명리관을 등용하였는데, 사람의 이름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에서 이름을 중시하였읍니다.
오행의 의미 중 木은 仁을, 火는 禮를, 土는 信을, 金은 儀를, 水는 知를 뜻하는데
동대문은 동쪽을 뜻하는 木의 <仁>자를 사용하여 興仁之門이라 하고
남대문은 남쪽을 뜻하는 火의 <禮>자를 사용하여 崇禮門이라 하고
중앙을 뜻하는 土의 <信>자를 사용하여 普信閣이라 하고
서대문을 서쪽을 뜻하는 金의 <儀>자를 사용하여 敦義門이라 하고
북쪽을 뜻하는 水의 <知>자를 사용하여 弘智門이라 하는 것입니다.